전도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그 분의 재림과 그 나라를 걸고 여러번 강조하시면서, 엄하게 내리신 명령입니다.
하기 어렵다고 미루거나 안 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땅끝까지 이르도록 순종하고 실천해야 할 가장 긴급하고 절박한 명령입니다.
교회는 이 사명을 감당할 때, 교회의 정체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포스트모던시대로 접어들면서 복음전도는 그 어느때보다 통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교회가 전도를 강조하지만, 실제로 효과는 미비한 상태입니다.
성도들은 전도를 무거운 짐으로 여기고 실천하지 못합니다.
사회적으로는 그 어느때보다 반기독교적 정서가 깊이 뿌리를 내려서 기독교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보내고 있고,
불신자들은 전도에 대해서 적대감을 드러냅니다.
그나마, 전도를 한다는 교회들도 거리로 나가서 전도지와 함께 전도물품을 나누어 주는 것이 보통인 상황입니다.
기독교에대해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보지도 못하고 그저
"휴지 받아가세요" , "이거 한번 읽어보세요."
이 정도로 전도를 끝내고 맙니다.
전도가 끝나면, 주변에 전도지가 버려져서 나뒹구는 그런 상황이 펼쳐집니다.
또한 특별한 사명감으로 거리나 지하철에서 외침전도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역시 안타까운 것은 불신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공공장소에서 목청을 높여서 고함을 지르면서 외치는 전도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불신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서울지하철공사가 2012년 6월, 5호선에서 8호선 승객 약 2천명을 대상으로 만족도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가장 없어져야 할 모습"을 물었는데, 1위가 전도라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전도방법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 이대로 좋은가? 다른 방법은 없을까?
변화하는 세상속에서 전도의 방법은 시대와 지역과 대상에 따라 전략적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본래 전도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형태를 띄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결코 인간의 정신이나 합리적인 소통방식을 차단한 채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도구들을 통해서 전달이 됩니다.
하나님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철저하게 "수용자 중심" 이었습니다. 그 분은 인간들을 자신의 입장으로 끌어들이지 않으시고
오히려 인간에게 가장 익숙한 상황속으로 자신을 내 던지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가지신 전략이었습니다.
빌 2:6-8 말씀에 그 전략이 잘 나와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하늘을 버리고 인간의 몸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착한 마케팅"이라는 경제용어가 있습니다.
개발, 산업발전에 역점을 두었던 과거에는 생산자가 사회주체로서 기능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산업구조가 훨씬 발전되고 고도화된 상황에서는 소비자에게 더 큰 주도권이 있습니다.
불신자의 관점에서 전도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과거에는 단순히 들려지는 메시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메시지가 참이라는 것이 증명만 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엔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의 인격, 그 분의 삶이 더 중요하게 평가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시작하시면서 마태복음 5:16 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을 비춘다는 것을 착한행실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걸로 감동을 끼치고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전도지 한장 나누어 주면서 예수 믿으라고 외치는것도 좋지만 그 정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착한행실로 감동을 끼쳐야 합니다.
이것을 선한영향력이라고 합니다.
선한영향력을 통해서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착한 행실로 감동을 끼치고, 지역사회를 섬기게 될 때 전도의 문은 활짝 열리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