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를 어떻게 보는지의 관점에 따라 여러 대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최근 정치적인 양극화 현상이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나라에 오신다면,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가실까요, 아니면 태극기를 들고 시청 앞으로 가실까요?
우리가 이런 질 물을 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미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대립적인 정치대결 구조로 간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 보다는 누구의 편인가? 이것이 우리의 더 큰 관심사입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예수님은 그 어느 쪽에도 계시지 않는다고 할 수 있고, 또 양쪽에 다 계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당시의 정치적인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의 제자그룹은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칼을 차고 다니면서 로마의 식민통치에 저항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로마 정부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를 예수님이 부르셨고 서로 원수처럼 생각하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바리새인들이 로마의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물어봅니다.
그때 예수님은 로마에 세금을 내는 은전에 새겨진 얼굴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로마의 가이샤의 형상이라고 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막 12:17) "
예수님께서 회색분자 이실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세속정치권 어느 편에만 속하는 개념이 아니라 훨씬 더 큰 개념입니다. 만약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부정적인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은 어느 쪽에도 기울어질 수 없습니다. 진보의 개념을 무신론과 유물론사상과 연관하여 본다면 당연히 예수님은 같이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보수의 개념을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의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거기도 예수님은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기득권 세력에 저항하다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진보와 보수의 가치를 올바른 가치에 대한 태도의 입장으로 본다면 다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사회적 틀이나 제도에 대한 태도로 본다면 예수님은 진보적일까요 보수적일까요?
어떤 면에서 보면 예수님은 상당히 진보적인 분이셨습니다. 율법에는 안식일에 노동하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예수님은 안식일에도 병든 자를 고치셨습니다. 그 당시 성전에서 백성들이 환전을 하고 제사용 동물을 파는 일은 흔한 일이었는데, 예수님은 상을 다 엎으시고 그런 사람들을 성전에서 다 내쫓으셨습니다. 굉장히 파격적인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그런 일들을 하신 것은 성경에 기록된 원래 하나님의 의도와 마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을 지키기 위한 열정으로 보면 예수님은 보수적인 분이신 것입니다.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지키려는 행동이었습니다.
또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가 어떤 사람을 배려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진보주의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진보주의자입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여성, 아이들,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가까이하셨습니다. 나아가 이방인, 세리, 창녀들과 같이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죄인들과도 거리낌 없이 어울리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보수주의 사람들은 부자나 사회에 특별한 기여를 한 사람을 보호하고 배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 중에는 부자와 사회적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가까이한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부자와 지도자들을 대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 중 하나는 공평에 관한 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진보는 모두가 똑같이 나누는 평등을 공평이라고 말하는 반면, 보수는 권력이 있거나 집단을 위해 뛰어난 일을 한 사람에게 보상하는 것이 공평이라고 여깁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이 두 가지 가치가 다 반영되어 있습니다. 포도원 일꾼 비유를 보면 아침 일찍 온 사람이나 뒤늦게 온 사람이나 똑같은 임금을 받습니다. 일찍 온 자들의 화를 낼 때, 예수님은 제도적으로 똑같이 준 것이 아니라 자비로운 마음으로 마땅한 사례를 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달란트 비유를 보면 어떤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어떤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다섯 달란트를 각각 줍니다. 각 사람의 재능대로 주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재능에 따라서 다르게 주는 것을 예수님은 불공평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가 되겠다는 청년에게 가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돕는 사람들 중에는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부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 청년의 마음이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식으로 나누던지 그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면 진보든지 보수든지 하나님의 나라에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진보주의적이나 보수주의적인 판단이 너무 깊게 깔려 있으면 예수님의 말씀도 편견을 가지고 볼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정의에 따라 진보적이기도 보수적이기도 합니다. 양쪽의 가치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어느 정도 다 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정의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진보와 보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먼저 예수님의 입장에서 진보와 보수의 주장을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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